오늘은 주일입니다. (12/28)

오늘은 금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가 지나갑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한 해의 삶을 돌아보며
찬양과 회개의 기도와 감사와 말씀을 통해 가야 할 길과
행해야 할 일을 분명히 하고 새롭게 결단함으로 
마지막을 잘 마무리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해를 소망과 기대로 맞이 할 준비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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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27) 말씀 묵상 (누가복음/Luke 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Why do you call me, ‘Lord, Lord,’
and do not do what I say?
 
산산수훈과는 달리 평지에서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의 결론은 믿는 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의 죄를 일깨우려는 목적이
아니라 말씀을 실천하게 하려는 목적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자신을 ‘주여’라고 부르면서도 자신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을 책망하십니다.  ‘주여’에 해당하는 아람어 단어는 단순한 존경을 담은
의미이지만, 이 단어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 사용하면, 그 이상의
의미를 (메시아) 가집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믿으면서도
예수님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주춧돌 없이 흙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믿고 말씀대로 행하는 자는 땅을 깊이 파고 주춧돌을 반석 위에 놓고 집을
지은 사람과 같습니다.
 
실천이 없으면 없을수록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집니다.  말로만 믿는 사람은
사실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을 더 닮아가고
믿음이 성장하고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반드시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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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26) 말씀 묵상 (누가복음/Luke 7: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he sent them to the Lord to ask,
‘Are you the one who is to come,
or should we expect someone else?’
 
예수님께, 오실 그이가 주님이신지를 묻는 침례 요한의 질문입니다.
이때 요한은 감금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가서 예수님께
질문하지 못하고 제자를 보냈습니다.  
‘오다’는 남성 단수 분사로, ‘오시는 한 남자’를 의미합니다.  요한의 질문이 모호해
보일 수 있지만 저자인 누가는 예수님께 ‘주’라는 호칭을 붙임으로 예수님이 모든
이가 기다려온 주이심을, 메시아임을 요한이 확신했음을 묘사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이 기대한 메시아의 모습과 달리, 심판하시는 사역을 하시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생각이 들어 이를 확인하고자 제자들을 보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이신 증거를 제시하며 감옥에 갇힌 요한이야말로 구약의
선지자들보다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말 3:1)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셔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분을 믿는 성도들이 그 기쁜 소식을 전파하여 구원 사역을 이어가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셨던 성탄절은 지나갔지만 그 분의 아름다운 소식은 계속 전파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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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25) 말씀 묵상 (시편/Psalms 25:5)

주의 진리로 나를 인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니이다
guide me in your truth and teach me
for you are God my Savior,
and my hope is in you all day long
 
다윗은 어려운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의 길로 가겠다고 결단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종일 바라봅니다.  시간이 촉박하고 시시각각으로 사방에서 압력이 들어오는데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보는 것이 쉽겠습니까?  조급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참된 소망이,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기에 종일토록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무엇을 우러러보고 있습니까?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만 우러러보는 행위를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순간 결국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오늘날 같이 빨리 빨리에 익숙한 우리는 참는 것을 잘 못합니다.  1, 2분도 참지 못해
경적을 울리며 화를 내는데, 끝까지 종일토록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쉽겠습니까?
하지만 믿음의 인내가 있어야 바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다림 끝에 구원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빨리 빨리가 아니라 바른 길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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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24) 말씀 묵상 (시편/Psalms 25: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Show me your ways, LORD,
teach me your paths.
 
다윗은 어려운 상황에서 여호와께서 주의 도를 보이시고 주의 길과 진리로 교훈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여기서 ‘주의 도’와 ‘주의 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신
행동 규범, 즉 하나님의 언약인 ‘토라’를 말합니다.  이 말은 그가 주의 언약의 가르침대로
살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뜻이나 지혜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따르겠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평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가까이 지내지 않으면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입니다.  우리 인생의 길을 아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일도
아쉽니다.  반면 우리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에 내일 일에 대해 근심하고 걱정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신뢰하지 않으면 쉽게 세상의 헛된 우상을 따라갑니다.  우리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분의
지도와 교훈으로 지혜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여호와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 즉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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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23) 말씀 묵상 (시편/Psalms 25:3)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No one who hopes in you will ever be put to shame,
but shame will come on those who are treacherous without cause.
 
다윗의 시로, 내용상 ‘탄식시’이며 지혜시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어떤 배경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윗의 원수들은 하나님을 바라는 다윗을 대적하고 이유 없이
속이지만, 다윗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원래 의미는 강력한 부정의 의미가 들어있는 바, 주를 바라는 자들은 ‘결단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까닭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속이는 자들’은 ‘불성실하게 행하다, 거짓으로 대하다, 기만하다’는 뜻으로 언약적인
의미를 연상시킵니다.  즉 다윗의 대적들은 까닭 없이 동족으로서 서로에 대한 언약적
신뢰를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것이기에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무엇을 향합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음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 바라며 신뢰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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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22)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the gospel he promised beforehand through his prophets
in the Holy Scriptures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의 인사를 한 다음, 하나님의 복음과
구약의 예언이 어떤 관계인지를 밝혀줍니다.  이 복음은 바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셨던 아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즉 신약의 복음은 구약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서로 다른 분이 아니라 동일한 분입니다.
 
바울이 왜 복음이 무엇인가를 자세하게 설명하는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거짓 교사가 아님을 확인시키기 위함입니다.  
복음은 한 사람,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쩌다가 갑자기
나타나신 분이 아니라 선지자들을 통해 성경에 미리 예언된 분이시며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분입니다. (3절)
 
오래 전에 예언되었고 기다렸던 구세주가 약속대로 이 땅에 오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영원한 왕이신 메시아가 성탄의 주인공이요 그분이 오심으로 죄에서 해방되어
구원받았음을 기뻐하며 그 기쁜 소식을 (복음) 나누는 성탄절이 되게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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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탄주일입니다. (12/21)

오늘은 성탄절을 앞두고 성탄주일로 드립니다.
성탄절이 무슨 날인지도 모른체 상업화 되어 가고 있는 이 때
예배를 통해 성탄절의 본질을 회복하고 구원의 기쁨을 감사하며
그 기쁨의 복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하고 평화를 누리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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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20) 말씀 묵상 (빌립보서/Philippians 1: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The latter do so out of love,
knowing that I am put here for the defense of the gospel,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2년간 포로로 지내면서도 복음을 계속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감시하던 로마 군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졌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는 지하감옥이 아니라 셋집에 거함)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동안은 바울의
능력과 기세에 눌려 복음을 전하지 않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또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삯꾼 목자처럼 명예와 지위와
칭찬을 목적으로 불순하게 전도하여 바울에게 괴로움을 더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성도들은 순수한 동기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복음 전파를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사도임을 인정하고, 권위와 역할을
존중하고 사랑하여 열심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불순한 목적을 가진 대적과 경쟁자들이 항상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데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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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12/19) 말씀 묵상 (빌립보서/Philippians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과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And this is my prayer;
that your love may abound more and more in knowledge and depth of insight,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일꾼인 감독, 집사, 그리고 모든 성도들에게
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으로 문안한 다음,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내용은
자신과 그들이 서로를 향해 품은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알아가며 뛰어난 통찰력으로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총명’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이곳에만 나오는데 영적 분별력 혹은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풍성하게’는 현재 능동형 가정법 동사로, 바울 자신과 빌립보 성도들 간의
사랑이 끊임없이 점점 더 풍성하도록 기도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자 끊임없이 성장하고 성숙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체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께서 각양 좋은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교회에는 늘 사탄의 방해가 있기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고 사랑의 풍성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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