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6/22) 말씀 묵상 (로마서/Romans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He who did not spare His own Son,
but delivered Him over for us all,
how will He not also with Him freely
give us all things?
 
5-8장의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단락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죽기까지 내어주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기꺼이
주지 않으시겠는가?  바울은 아들을 내주신 것과 모든 것을 주시는 것이 서로
깊숙히 맞물려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내주신 것은, 우리를 죄의 세력에서 건져 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하시기 위함인 바, 아들을 주신 목적과
부합되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기꺼이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분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 무엇이든 누리는 복된 삶을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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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1) 말씀 묵상 (요한복음/John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Truly truly, I say to you,
he who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does not come into judgement, but has passed out of death into life.”
 
영생과 심판이 예수님에 대한 반응에 따라 나뉘는데 그 기준은 믿음의 여부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보내신 분 즉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는 가에
따라 엄청난 결과로 나뉩니다.
 
특별이 이 말씀에서 주목할 것은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과거)  어떤 이단들은 믿지만 결과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고 끝에 가봐야 안다고 하는데 그것은 결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믿으면 그 순간 사망에서 생명으로 완전히 옮겨갑니다.  그래서 주님은
‘진실로 진실로’라는 강조 어구로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심을 끝까지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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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20) 말씀 묵상 (요한일서/1 John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These things I have written to you who believes in the name of the Son of God
so that you may know that you have eternal life.
 
사도 요한은 편지의 마지막에 편지를 쓴 목적을 밝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확신케 하려고 썼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게 한다’는 (오이다) 알되 보고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인식하는 차원의 앎이 아니라 영생이 있음을 체험적으로 깨닫고 
알게 하려는 것임을 말합니다.
 
편지를 받는 독자들 주위에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가짜들이 많았기에
사도는 그들이야말로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들이라고 선언하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 세상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으로 오신 
구세주임을 그리고 그분을 믿으면 영생이 임함을 선포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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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9) 말씀 묵상 (신명기/Deuteronomy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All these blessings will come upon you and overtake you
if you obey the LORD your God
 
이 구절도 조건절과 귀결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호와의 음성을 듣는다면
즉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임하고 미친다는 것입니다.
 
‘임하면’은 ‘따라잡다, 따라가다’의 뜻으로 축복을 인격화해서 축복의 대상을
추적해서 끝내 축복을 안긴다는 표현입니다.  
‘이른다’는 말은 ‘안으로 가다, 들어가다’는 뜻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분명히 성취로 다가오게 됨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이 모든 복’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음성에 순종할 때 임하는 결과를
말하는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자녀, 가축, 수확의 복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스라엘이 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복들이 그들을 
따라온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만복의 근원’이시기에 먼저 순종해야 복이 따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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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8) 말씀 묵상 (히브리서/Hebrews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For since He Himself was tempted in that which He was suffered,
He is able to come to the aid of those who are tempted.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제사장을 넘어 대제사장으로, 그리고 누구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크고 위대하신 분으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이 세상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하시기 위해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과 아픔과 시험을
받으셨고 그 모든 것을 이기셨습니다.  앞부분의 정확한 번역은 ‘그가
고난을 당하실 때 시험을 받으셨으므로’ 입니다.
 
주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이기는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보장된 궁극적인 승리요 운명입니다.  주님 안에 붙어 있으면 최종적으로 승리합니다.
왜냐하면 시험, 고난을 모두 겪으시고 승라히신 경험으로 위로하시고 도와주시고
중보도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고 함께 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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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7) 말씀 묵상 (이사야/Isaiah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Come now, and let us reason together,” says the LORD,
‘Though your sins are as scarlet, they wi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are red like crimson, they will be like wool.”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변론하자’고 부르십니다.  이 변론은 죄를
심문하고 질책하는 변론이 아니라 ‘씻으라, 깨끗하게 하라’고 명하신 하나님이
(16절) 그들을 은혜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예배와 삶이 아닐지라도 기회가 있습니다.
죄가 붉다 할지라도 참회하고 돌이켜 그분의 뜻에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죄를 꺠끗하게 하시고 그분이 허락하신 땅의 아름다운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것은 신실하신 그분의 약속이기에 반드시 말씀대로 하십니다.
 
온전치 못한 삶에서 돌이켜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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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입니다. (6/19)

주일인 오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찬양과 기도와 선포되는 말씀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뜻을 깨달아 알며, 은혜로 회복과 치유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복된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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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5) 말씀 묵상 (시편/Psalms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How can a young man keep his way pure?
By knowing it according to Your word.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대로, 한 자마다 8절씩 (22 x 8) 총 176절로 구성된
말씀 중에, 두 번째 자음인 ‘베트’로 시작하는 단락의 시작으로 간구와 고백이
주를 이룹니다.
 
시인이 말씀을 지키겠다고 고백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젊은이가 삶의 길을
깨끗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젊은이’가 쓰인 것은
죄에 더 많이 노출되고 유혹이 많은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알아야 제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에 말씀을 배우기를 게을리하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종교인으로 변질되기가 쉽습니다.  그렇기에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되새기며 그분의 뜻을 깊이 알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혈기 왕성한 청년의 때에 절제를 배우고 행실을 깨끗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으로 준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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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4) 말씀 묵상 (마태복음/Matthew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And He said to them, ‘Follow Me,
and I will make you fishers of people.’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시면서 주신, 단호한 명령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순전히 자신만을 뒤따르기를 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자신들의 계획에 따라 스스로 인생 경로를 결정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아 왔으나 이 후로는 모든 결정을 예수님께 맡기고 오직 그분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사람을 낚는 어부, 즉 영혼을 구하는 
인생이 되게하실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가치관과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하고 오직 그분의 뜻을 따라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직업, 재산, 심지어는 가족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도록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믿고 따라가는 
제자가 되어, 제자를 삼는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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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6/13) 말씀 묵상 (시편Psalms 95: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Come, let us worship and bow down.
Let us knell before the LORD our Master.
 
‘오라’는 단어는 ‘들어가다’는 동사의 명령형으로, ‘우리가 들어가자’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성전에 함께 들어가자는 의미보다는 하나님께 경배하자는 요청으로
이해함이 좋습니다.  그 이유는 이어지는 동사들, 즉 ‘굽혀 경배하며’, ‘무릎을 꿇자’가 
자발적인 경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하는가?
그분이 만물을 존재하게 하신 창조주시며 우리는 그분에 의해 존재하게 된,
지음받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찬양해야 하는 예배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언약 백성이 되었고 자녀가 되었고 영생을 얻었기에
온 마음을 다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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