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3/20) 말씀 묵상 (마태복음 6장24절, Matthew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No one can serve two masters.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he will be devote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
 
한 사람이 두 말에 동시에 오를 수 없으며, 두 활을 동시에 당길 수 없음 같이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를 중히 여기면 다른 하나를 경히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100% 충성이요 
100% 순종이지 반쪽짜리로는 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지 못합니다.  동시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재물은 Mammon으로 ‘재물 신’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재물 신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한 편을 사랑하면 다른 한 편은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중간이 있을 수 없고 거기에 똑 같은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연인 관계나 부부 지간에 한 사람이 파트너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또 사귄다면 그게 온전한 사랑이 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두 가지를 비교하고 계신데, 그 비교가 맞지 않습니다.
한 분은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고 다른 한 쪽은 재물 즉 돈입니다.  재물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지 그것은 하나님과 비교할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재물을 하나님과 비교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재물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크고 유혹도 크다는 말입니다.  아니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돈은 그만큼 힘이 있습니다.  오늘날이 그렇지 않습니까?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 아닙니까?  그러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돈을 벌고 출세하고 성공하려고 합니다.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잠시 감옥에 가거나 법은 어길 수 있다고 여깁니다.  심지어 방해가 된다면 사람도 죽입니다.  그러니 그 돈이 주는 유혹이 얼마나 큽니까?  
돈을 사랑하는만큼 하나님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돈을 섬기는 것은 부딪히기 때문에 절대로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인간의 약함과 악함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니 틀림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물질관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관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아까워하면서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에는 아낌 없이 물질을 투자한다면, 없으면 빚이라도 내서 산다면 과연 그 사람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삶을 살고 있는 겁니까?  
그러면서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긴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돈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면,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되면 그 때부터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하게 됩니다.  때로는 치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바르게 정당하게 노력해서 돈을 버시고 사용하시면 됩니다.  기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히 가겠습니까?  진정한 기쁨은, 영원한 기쁨은 하나님을 위해 물질을 벌고, 관리하고, 쓰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르게 청지기 정신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영원히 썪지 않는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는 것이고 그 분께 가면 큰 칭찬과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과연 우리 인생의 주인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보시고 다시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고 그 분만 주인으로 모시는 충성된 종, 자녀, 일꾼의 삶을 사십시다.